제시 리버모어1877년 7월 26일 - 1940년 11월 28일 미국 매사추세츠 출신
주식투자계의 레전드
가격이 오르면 사고, 내리면 공매도를 하는 이른바 추세매매의 창시자
빈농의 아들로 태어난 리버모어는 여기에 계속 있다간 앞날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10대초반에 5달러를 들고 보스턴으로 갔다. 보스턴의 증권브로커회사인 페인웨버에서 주식호가판을 정리하는 사환으로 일하기 시작했다. 15세 때 주식, 상품투자로 2천만원을 벌었다. 사환으로 일하는 것보다 전업투자자로 활동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 그는 결국 20세에 2억원을 벌었다.
1906년 샌프란시스코 대지진으로 주가가 급락하자 지속적인 공매도로 엄청난 돈을 벌었다. 1907년에 뜬금없는 대폭락이 나타나고 공매도로 또다시 엄청난 돈을 벌게 되었다. 리버모어는 그 때 아침시가에 공매도를 시작해서 투매를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1929년 여름에 시장은 초강세분위기였다. 리버모어는 시장이 보합상태에 들어갔다는 것을 파악하고 본격적으로 공매도에 돌입했다. 다른 사람들은 리버모어가 미쳤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해 가을에 대폭락이 이루어지고 그는 많은 돈을 벌었다. 언론에서는 리버모어의 매도포지션이 폭락을 촉진했다고 비난했다.
피라미딩전략이라는 자금관리방법으로도 유명하다. 종목을 단번에 매수하는 것이 아니라 일단 조금 매수한 후에 수익이 날 경우에만 추가로 또 조금씩 매수하는 것이다.
그는 시장이 상승장일때만 주식을 매수해야 하며, 하락장일때는 공매도를 하거나 하락장이 끝날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말했다. 주가가 박스권을 유지한다면 인내하라고 말했다.
데이트레이딩으로는 결국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강세장일 때는 기본적으로 Buy and Hold 전략을 유지했다.
기업의 내부정보라며 떠도는 얘기들은 믿지 말라고 했다.
현대에 워렌 버핏이 주식투자의 명인으로 유명하지만 아직 리버모어를 뛰어넘었다고 평가받고 있지는 못하다.
권총자살로 생을 마감하게 된 리버모어이지만 지금도 그의 삶을 추종하려는 개인투자자들이 현대 주식시장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하지만 이 사람의 방식을 추구할지는 신중하게 생각하고 하자.
공매도는 위험이 큰 투자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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