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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면을 통한 국민 통합? 이것이야말로 군사독재의 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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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좀지나가자 2021. 1. 18. 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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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면을 통한 국민 통합? 이것이야말로 군사독재의 유산

심용환 역사N교육연구소장

발행 2021-01-18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대표가 이명박,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사면’을 이야기한 후 한 달이 넘게 뜨겁다. 으레 이런 이야기에는 ‘국민대통합’이 명분이기 때문에 대통령의 공식적인 발언에 ‘통합’이라는 단어가 들어갔는지를 두고 보도가 되기도 했다. 언론 또한 의견을 개진하는데 주저하지 않는 듯 하다. 1월 15일 동아일보는 사설을 통해 ‘여론만 의식 말고 통합을 위해 조속한 결단’을 촉구했고, 조선일보를 포함한 여타의 보수 언론 역시 연초부터 비슷한 논조를 반복하고 있다.

1997년에도 동아일보와 조선일보는 사면을 강력하게 요구했다

극히 유사한 상황이 과거에 있었다. 1997년 4월 18일. 누구도 특별히 기억하는 날은 아니지만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이보다 중요한 날이 없을지도 모른다. 12.12군사반란, 5.18광주민주화운동, 그리고 비자금 문제를 두고 전두환, 노태우를 비롯한 신군부세력에 대한 최종판결이 내려진 날이기 때문이다. 당일 동아일보는 “‘성공한 쿠데타’ 단죄.. 역사 세웠다”, 조선일보는 “부끄러운 역사 반복될 수 없다”, “명백한 군사반란-내란목적 살인 규정”, 한겨레신문은 “폭력 정권장악 불용 준엄한 단죄” 등으로 상황을 묘사하였다. 동시에 최종 판결이 난 당일, 같은 지면에서 곧장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에 관한 ‘사면’을 다루었다.

12·12군사반란 및 5·18광주민주화운동 진압 혐의로 구속기소된 전두환, 노태우가 1996년 8월 26일 1심 선고공판에서 나란히 서 있다.ⓒ자료사진

12.12 5.18사건의 대법원 확정판결은 ‘성공한 쿠데타’의 단죄라는 의미와 함께 미뤄뒀던 난제 하나를 불가피하게 제기하고 있다. 그동안 물밑 현안으로의 눈치를 살펴온 전, 노씨 사면 문제다. 대법원 확정판결로 이 문제의 사법적 해결이 가능해졌고 따라서 어떤 형태로든 공론화를 통해 결론에 접근할 계기가 주어진 것이다.

... 전, 노씨 사면 여부는 전적으로 김영삼 대통령의 권한에 속하는 문제다. 이제 대통령으로서는 현안의 한보사태든 현철씨 의혹문제든 전, 노씨 사면문제든 자신의 임기 내에, 그것도 가급적 빨리 분명히 매듭짓는 것이 좋다. 남은 임기동안의 효율적 국정운영을 위해서도 그렇고 21세기를 맞을 차기 정권이 다시 과거에 발목이 붙잡혀 미래로 나아갈 수 없도록 하지 않기 위해서도 그렇다. 전, 노 두 전직 대통령도 역사와 국민 앞에 진실로 회개하는 모습을 확실하게 보여야 함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동아일보 사설에 나온 내용이다. 동아일보는 적극적으로 김영삼 대통령에게 사면을 요구했다. 문장은 제안처럼 보이지만 실상 ‘한보사태’, ‘현철씨 의혹문제’와 두 대통령에 관한 판결을 연결 지으면서 ‘가급적 빨리 분명히 매듭’지을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것이 곧 미래로 나아가는 길이라면서 말이다. 마지막 부분에 전제를 하나 달기는 한다. ‘두 전직 대통령도 회개하는 모습’을 확실히 보여주라는 말인데 ‘무엇이 회개하는 모습’일까. 회개하는 모습이 객관적이고 공적으로 입증될 수 있는 주제일까? 더구나 돌아보건데 그들은 사면의 대가로 진심으로 회개했던 것일까?

김 대통령이 대선 전에 사면을 단행할 경우에도 여당 대선 후보의 건의를 받아들이는 형식이 좋다는 것이 대체적 견해다. 그러면서도 청와대 참모들은 조기 사면 가능성도 배제하지 못하고 있다. 한보·김현철 정국 극복을 위한 국민적 심기일전 및 화합 분위기 조성을 위한 카드로 사용할 수도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같은 날 조선일보 사설 역시 주장은 비슷하다. 두 신문사는 당시 김영삼 대통령이 처한 정치적 위기와 사면을 조건부로 이야기를 꾸리고 있다. 이 또한 따져보면 논리적 정합성이 없다. 두 전직 대통령 재판은 1979년 12.12군사반란과 1980년 5.18광주민주화운동, 그리고 대통령 재직 당시 비자금 문제 등이 핵심이다. 김영삼 대통령기에 일어났던 한보그룹 부도사태 혹은 ‘소통령’이라고 불렀던 차남 김현철씨의 권력 남용 문제와는 무관한 성질이다. 더구나 3심 재판이라는 사법부의 결단을 5년 단임제 대통령의 개인적 정치 문제로 뒤집어 버린다면 이것이야말로 3권 분립을 위협하는 위헌적 행동 아닌가. 여하간 당시에는 조선일보의 스토리대로 진행되었다. 야당 지도자 김대중이 청와대를 방문하여 ‘용서하자’는 명목으로 사면을 건의하였고 김영삼은 후일 회고에 나오듯 ‘딱 1년만 잡아둘 생각이었다’라며 이를 허용하였다. 누가 누구를 용서하는 것이며, 사법부 판결에 대한 대통령의 우월권은 헌법 어디에서 찾아볼 수 있을까.

노태우 정권, 통합의 논리를 만들다

조금 더 시간을 거슬러 가보자. 1987년 6월 항쟁 이 후 상황은 기묘했다. 민주화가 도래했음에도 불구하고 군인 출신의 노태우가 대통령에 당선되었기 때문이다. 안정적인 민주화로의 이행을 강조하며 노태우는 통합의 논리를 꺼내들었다. 오늘날 정치인들이 그토록 반복하는 ‘통합’이라는 단어, ‘통합’이라는 미명하에 반복하는 행동양식은 노태우가 만든 것이다.

대통령 당선자 노태우는 ‘제6공화국 국정운영방안에 관한 의견을 수렴’하며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표출된 지역간 계층간 종교간 세대간 갈등의 매듭을 풀기위한 목적’으로 민주화합추진위원회(민화위)를 1월 11일 발족하였다. 특히 5.18광주문제를 국민통합을 위한 최우선 과제로 설정하였으며 피해 유족을 직접 불러 증언을 듣기도 하였다.

결과는 어땠을까. 1988년 4월 1일 정부대변인 정한모 문공부 장관은 ‘광주사태 치유를 위한 종합적인 방안’을 발표했다. 우선 ‘정치발전이라는 큰 흐름에서 볼 때 광주학생과 시민의 민주화를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고 말하였다. 광주사태가 광주민주화운동이 된 것이다. 당시로써는 파격적인 선언이었다. 하지만 ‘국민 모두는 서로를 이해하고 용서하는 너그러운 마음으로 아픔을 씻고 모두의 명예가 존중되는 가운데 국민대화합에 동참해줄 것을 호소’한다면서 적극적인 보상만 약속한 채 피해 유족들이 가장 강력하게 요구했던 진상규명은 외면하고 말았다. 5.18광주민주화운동의 정신적이고 추상적인 가치는 안정하되 그로 인해 파생된 현실 문제에 대해서는 고치지 않겠다는 노태우식 통합논리이며 이것을 곧 ‘국민대화합’이라고 본 것이다. 조금씩 양보하며 함께 살자는 논리로 말이다.

대통령 당선을 전후로 노태우 정권은 재야 지도자와 운동권 학생들에 대한 대대적인 ‘사면’을 단행하였다.

6.29 선언정신에 따라 이미 사법부의 판단이 내려진 경우라도 개전의 정을 보며 석방될 수 있도록 최대한 노력하겠다. 또 미석방자나 재판중인 자라도 같은 취지에서 사법부가 최대한 배려하도록 노력하겠다. 6.29 선언 이후 석방자가 1천 1백 24명에 이르고 있다. 앞으로도 전향적으로 석방 노력 계속 하겠다.

그러나 극심한 파괴범이나 대한민국 체제를 부정하는 사범은 곤란하다... 극렬한 용공활동 혐의가 있어 수사 중인 것도 있다. 6.29선언을 위반하고 민주화에 역행하는 것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 폭력은 민주화를 방해하는 행동이다. 재일교포간첩 2명을 얘기하는데 내가 알기로 그들은 북한을 왕래한 간첩일 뿐 아니라 전향을 거부하고 있다. 또 보안법 철폐를 주장하는 등 극렬한 공산주의자다.

1987년 9월 보다 적극적인 사면을 요구하던 당시 야당 총재 김영삼에 대한 여당 총재 노태우의 답변이다. 노태우는 항상 이런 식으로 일을 처리했다. 민주화를 받아들이지만 좌경용공세력은 용납해서는 안 된다. 민주화는 받아들이지만 노사분규는 국민 불안을 촉진한다. 문장 자체로는 아무 문제가 없다. 하지만 결과는 어땠을까? 노태우의 의지대로 상황은 흘러갔다. 부정선거 없는 5년 단임제 선거를 제외한 급진적 사회개혁 혹은 다양한 형태의 주장들은 모두 좌경용공 혹은 노사분규 정도로 치부되었다. 노태우식 통합의 결과는 결국 기존의 지배체제에 대한 최소한의 수정만을 용납한 것이었다. 이후 한국정치에서는 무엇이 바뀌었을까. 매번 통합을 이야기하고 그로 인한 사회적 결과는 기존의 지배체제를 공고히 하는 것 외에 어떤 변화가 일어났을까. 막연해지는 순간이다.

대통령의 사면권, 반헌법적 권한 아닌가?

더불어 대통령의 고유권한인 ‘사면권’은 여야를 막론하고 지난 20년간 어떻게 쓰이고 있을까. 대통령의 정치적 무기 외에 그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선고가 끝나자마자 돌아서서 사면을 말하는 것은 저는 비록 사면이 대통령의 권한이기는 하지만, 대통령을 비롯해서 정치인들에게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권리는 없다고 생각을 합니다... 국민들의 아픔까지도 다 아우르는 그런 사면을 통해서 국민통합을 이루자는 의견은 충분히 경청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국민들이 사면에 공감하지 않는다면 이 사면이 통합의 그 방안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사면을 둘러싸고 또 다시 극심한 국론에 분열이 있다면 그것은 통합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국민통합을 해치는 결과가 될 것이라는 그런 생각입니다.

18일에 있었던 문재인 대통령의 신년 기자 회견 중 한 부분이다. ‘사면권’에 대한 대통령의 복잡한 심경이 담겨 있다. 근대 헌법의 역사를 살펴보면 국가 원수로서 대통령은 비상대권, 국회해산권, 사면권 등 ‘예외 상황’을 결정할 수 있는 권능이 있다. 하지만 그러한 권능이 있다고 해서 그것을 남용해야 된다는 말은 결코 아니다. 미국과 유럽의 수많은 대통령들이 특별한 권한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남용하지 않았다면, 히틀러의 경우 비상대권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민주주의를 무력화하였다. 오늘날 한국의 대통령은 비상대권, 국회해산권 같은 권한은 없다. 유신체제와 전두환 독재의 폐해 때문이다. 아르헨티나의 경우는 군부쿠데타를 얼버무리기 위해 ‘사면권’을 발동했는데 후임 대통령에 의해 사면권이 취소되고 재처벌 된 사례도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사회가 더욱더 민주주의적으로 나아가고 있느냐의 문제일 것이다. 정권과 상관없이 그때 그 시절 어설픈 통합의 논리, 때에 따른 정치적인 사면 놀음이 여전히 반복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이 부분 앞에 정치인도 국민들도 심각해져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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