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카영토확장 과 전쟁
18세기 초중반 북아메리카는 #캐나다동부퀘벡지역일부 를 제외하고 대부분은 영국의 식민지배 아래 놓여있었다. 식민지는 영국에 조세를 납부했으나 영국의회에 대표자를 파견하지 못했다. 당시 북미는 이주민의 대량 유입과 정착민들의 증가로 전반적인 인구가 급증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1760, 1770년대 북미 식민지와 영국 간에 본격적인 대립이 일어난다. 그 무렵 영국은 본국의 어려운 경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하여 #과도한세금 을 거두려했고, 이에 자신들의 의사가 반영되지 않은 본국의 정책에 식민지 미국 시민들은 크게 반발하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보스턴차사건 이다.
1773년 4월 영국의회가 차조례를 통과시켜 대중 음료인 차에 세금을 부과하자 이에 식민지인들이 강력히 저항한다. 미국의 식민지 반군들은 보스턴 항구에서 어둠을 틈 타 인디언으로 위장하여 영국 동인도회사 소유의 값비싼 차가 실려 있던 배를 파괴했다.
그 보복으로 영국의회는 손상된 차를 배상할 때까지 보스턴 시의 해상무역을 봉쇄하는 보스턴 항구 폐쇄법(Boston Port Bill)을 포함하여 식민지들 사이에 참을 수 없는 법(Intolerable Acts)으로 알려진 일련의 징계조치를 통과시켰다. 이 사건은 미국독립전쟁의 불씨가 되었다.
미국독립전쟁(1775-1783)이 일어나자 미 식민 반군은 1775년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대륙회의에서 조지 워싱턴을 사령관으로 임명하고 대륙군을 창설했다. 뒤이어 1776년 7월 4일, 대륙회의는 토마스 제프슨이 기초한 독립선언서를 발표하고 독립을 선언한다. 그리고 1777년 연합헌장을 채택하여 다소 느슨한 형태의 연합정부를 설립해 1789년까지 존속했다.
이후 미국은 강력한 국가의 창설을 원하는 자들이 주축이 되어 1787년 필라델피아 헌법회의를 조직했으며 격론 끝에 1789년 미합중국 헌법이 비준되었다. 그 후 공화국의 연방 상하 의원이 출범하고 조지 워싱턴이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이후 내정이 안정되자 연방정부는 본격적인 영토 확장을 위한 강력한 정책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첫걸음은 1780년 이후 추진한 프런티어 라인이었다. 미국은 이 라인을 확장하여 미동부의 장벽이었던 애팔래치아 산맥을 넘어섰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걸림돌로 간주된 원주민들을 제거하기로 결정한다. 이에 따라 원주민들이 대량 학살되는데 서부로 영토가 확장되는 만큼 원주민들의 수는 감소되었다. 일부 생존한 원주민들은 소위 인디언보호구역이라는 것을 만들어 그곳에 가두어 버렸다. 미국인들은 원주민들의 투쟁사를 인디언 전쟁(INDIAN WARS)이라고 주장하지만 사실 원주민 학살사라고 해야 정확하다.
이 전쟁은 1622-1794 사이에 23건, 1811-1854에 40건, 1855-1868에 37건, 1868-1898에 46건 등 276년 동안에 146 차례에 걸쳐 미국과 원주민 사이에 전투가 벌어졌다. 말이 무력사용이지 이건 전쟁도 아니고 당하는 입장에서는 침략과 학살일 뿐이다.
수없이 많은 전쟁 중 미국이 선전포고를 한 경우는 1812년 영국과 전쟁, 1846년 멕시코전쟁, 1898년 미국-스페인전쟁, 1917년 제1차 세계대전, 1941년 제2차 세계대전 등 5개의 전쟁뿐이다. 미국이 침략한 나라의 형편을 보면 대략 다음과 같은 조건을 가지고 있다.
첫째, 미국에 비하여 인구나 국력이 매우 약하다.
둘째, 미국에 반격을 가할 무기나 수단이 전혀 없다.
셋째, 미국을 침략할 의도가 전혀 없다.
한편, 미국이 침략하는 방법은 대략 다음과 같다.
① 스페인전쟁, 월남전 같이 전쟁 원인을 조작하여 침략한다.
② 매우 드물지만 전쟁을 유발하는 행위를 하여 도전하게 한다.
③ 침략의 세 가지 조건이 충족되면 예고 없이 무조건 쳐들어간다.
①의 방법은 매우 자주 쓰인 방법으로 조작공격 작전 또는 위장공격 작전이라 부른다.
이 작전은 원래 선박에 다는 국기를 적국의 기로 바꾸어 달고 공격을 한데서 유래한다. 미국이 미-스페인 전쟁을 유발하기 위하여 1898년 아바나 항에 정박 중이던 미 군함 메인호(USS Maine)사건을 조작한 일이나, 1964년 8월 2일 미국이 월남전을 유발하기 위하여 조작한 미 군함 매독스(USS Maddox)호 사건이 대표적인 예다.
여기서 잠깐, 13개주가 독립을 선언할 당시의 미국 영토를 살펴보기로 하자. 1776년 독립을 선포할 당시 미국은 필라델피아, 조지아 등 13개의 독립국이 연대한 연합 국가였다. 면적은 940.963㎢이고 인구는 약 250만 명 정도였으며 독립이 정식으로 승인된 1783년에도 400만을 못 넘겼다. 초기 아메리카합중국의 면적은 현재 미국의 넓이 9,826,675㎢의 10%정도인 셈인데, 남북한의 4.3배나 되는 크기다.
독일·폴란드·체코·오스트리아·스위스·벨기에·네덜란드의 합계 면적인 941.694㎢와 유사하다. 그러나 신생국 미국은 이 정도의 넓이로 만족하지 않았다. 미국이 영토 확장 야심을 본격적으로 들어내기 시작한 것은 제3대 대통령 토마스 제프슨부터였다. 1803년 제프슨은 1800년 프랑스가 스페인으로부터 할양받았던 미 대륙 중앙부 210만㎢의 루이지애나를 1500만 달러에 사들여 단숨에 국토를 2배 이상으로 확대했다.
그 후 1812년 영국과의 전쟁이 재차 점화되면서 본격적으로 영토를 확장했다. 특히 주목할 것은 멕시코와의 전쟁이다. 미국-멕시코전쟁(1846.4-1848.2)은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미국과 멕시코가 영토분쟁을 한 전쟁이다. 막강한 군사력으로 미국은 이 전쟁에서 승리했고, 1848년 2월 2일 과달루페이달고 조약을 체결했다.
이 조약에 따라 멕시코는 지금의 뉴멕시코 주, 유타 주, 네바다 주, 애리조나 주, 캘리포니아 주, 텍사스 주, 서부 콜로라도 주의 거의 모든 영토를 미국에 양도했으며, 미국은 이 대가로 말도 안 되는 가격인 1,500만 달러를 지불했다. 그리고 한반도 넓이의 15배에 달하는 300만㎢의 영토를 넓혔다. 많은 이들이 이 전쟁을 더러운 전쟁(Dirty War)이라 부른다.
비폭력 시민 불복종을 주장하여 간디와 톨스토이 등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준 데이비드 소로(H. D. Thoreau 1817-1862)는 이 전쟁에 반대하여 세금을 내지 않고 저항하다가 투옥되기도 하였다. 이 전쟁으로 수많은 멕시코 사람들은 졸지에 이산가족이 되는 비극을 겪었으며 아직도 이 비극은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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